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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21

조선의 왕조, 제1차 왕자의 난, 양녕대군의 일탈 조선의 왕조조선 왕조는 약 500년 동안 한반도를 통치한 왕조입니다. 조선을 다스린 왕은 총 27명입니다. 제1대 왕은 태조 이성계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제2대 왕은 정종으로,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입니다. 재위 기간이 짧고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제3대 왕은 태종 이방원으로,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며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습니다. 그는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제4대 왕은 세종으로,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입니다. 세종대왕은 조선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 중 한 명입니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키며,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제5대 왕은 문종으로, 세종의 맏.. 2024. 6. 16.
고려의 관료 체제, 무신정변 이후의 모습, 김보당의 난 고려의 관료 체제고려는 과거 제도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였습니다. 과거 제도는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었으며, 특히 문과는 문신을 선발하는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고려 시대 관료 체제는 무반과 문반으로 이루어진 양반으로 관직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무반에는 무신이, 문반에는 문신이 속해 있었는데, 문신은 최상위 품계인 1품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무신들은 3품까지만 허락되었습니다. 무신들도 문반 관직을 얻어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문신과 무신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여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의 관료 조직은 중앙과 지방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중앙 정부는 중서문하성, 상서성, 중추원 등 여러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부서는 행정, 군사, 재정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지방 행정은 5도 .. 2024. 6. 15.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의 권력남용, 멸망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고구려는 1차 여당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중요한 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최전방에 위치한 요동성이었습니다. 요동성을 빼앗은 당나라군은 안시성으로 향했습니다. 당나라 관점에서 안시성은 수도인 평양성으로 가기 전에 꼭 점령해야 하는 곳이었고, 고구려로서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645년 음력 6월 20일, 당 태종과 그의 군대가 안시성 앞에서 총공격했지만, 안시성의 성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안시성은 험준한 산 능선을 이용해 축조된 성벽이라 공격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안시성은 흙과 돌을 이용해 쌓은 토축 성벽이라 무척 견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평범한 공격으로 성문을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당나라군은 새로운 작전을 구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시성 앞에 토산을 쌓.. 2024. 6. 14.
신라의 관산성 전투, 화랑 김유신, 태종무열왕 김춘추 신라의 관산성 전투관산성 전투는 554년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중요한 전투로, 한반도 삼국시대의 역사를 바꾼 사건입니다. 이 전투는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과 패권 다툼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신라 재흥왕 재위 시절에 신라는 백제군이 신라의 요충지, 관산성을 습격하며 위기를 맞이합니다. 지금의 충북 옥천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관산성은 신라와 백제의 주요 격전지로, 관산성이 뚫리면 신라는 백제와의 영토 전쟁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신라로서는 관산성을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한 인물은 구해왕의 셋째 아들 김무력 장군입니다. 김무력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자로, 구해왕 항복 이후 신라의 주요 장군으로 조정에서 활약하고 있었.. 2024.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