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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의 관료 체제, 무신정변 이후의 모습, 김보당의 난

by 승인아커몬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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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남용한 고려의 무신들
권력을 남용한 고려의 무신들

 

고려의 관료 체제

고려는 과거 제도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였습니다. 과거 제도는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었으며, 특히 문과는 문신을 선발하는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고려 시대 관료 체제는 무반과 문반으로 이루어진 양반으로 관직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무반에는 무신이, 문반에는 문신이 속해 있었는데, 문신은 최상위 품계인 1품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무신들은 3품까지만 허락되었습니다. 무신들도 문반 관직을 얻어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문신과 무신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여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의 관료 조직은 중앙과 지방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중앙 정부는 중서문하성, 상서성, 중추원 등 여러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부서는 행정, 군사, 재정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지방 행정은 5도 양계와 3경 4도호부 등의 체계로 구성되어, 중앙의 명령을 지방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중앙집권적 통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고려의 관료 체제는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정치 체제의 특징을 가졌습니다. 이는 관료들이 도덕적이고 학문적인 소양을 갖추도록 요구하였으며, 왕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구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체제는 이후 조선 왕조의 관료 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역사에서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무신정변 이후의 모습

무신정변은 고려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무신정변을 일으킨 핵심 인물 3인방은 정중부, 이의방, 이고였습니다. 정변 직후 무신정변 3인방은 정권을 주도할 힘을 쥐게 되었습니다. 고려 시대 무신이 집권한 이 시기를 무신정변이라 부릅니다. 이들이 뜻을 모아 벌인 첫 번째 일은 고려 제18대 왕 의종을 폐위하고 수도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거제도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종의 동생을 새로운 왕, 명종으로 세웠습니다. 여전히 고려의 왕이 권위를 누리고 있었지만 정변 이후 무신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우선 그들이 간절히 바랐던 것, 무신과 문신 간의 차별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없었던 무신들은 무신들도 문반직을 겸할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고려 상위 품계 2품 이상의 재상직에도 오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정변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중부는 종2품에 올라 지금의 국무위원과 같은 재상을 겸직했습니다. 정8품 하위 무신이었던 이의방과 이고는 품계가 5단계나 상승해 종3품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정중부가 종2품 재상직에 오름으로써 드디어 무신도 재추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추회의는 2품 이상의 문반인 재상만 참여해 고려의 중요한 정책을 논했던 국정 회의입니다. 정변 3인방은 높은 관직뿐만 아니라 재산도 챙겼습니다. 폐위된 왕 의종에게는 궁궐 외에 재물을 가득 쌓아둔 개인 저택이 3채나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의종의 집과 재산을 나눠 가지며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김보당의 난

무신들이 집권한 지 3년째인 1173년 음력 8월 20일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김보당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유력 가문 출신의 문신 김보당이 더 이상 무신정권의 횡포를 참지 못하겠다며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권력을 차지한 뒤 무신들은 높은 관직을 겸직하며 권력을 남용했습니다. 무신들이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권력을 남용하는 행태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간관 김보당은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보당은 혼란한 고려를 바로 세우려면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무신정권을 처단하고, 고려를 무신정변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지방관이 되자마자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반란을 도모합니다. 그리고 폐위되어 거제도로 유배된 왕, 의종을 끌어들입니다. 김보당은 고려가 올바로 서려면 무신들을 물리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세운 왕 명종도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종을 다시 왕으로 추대해 과거의 고려로 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김보당의 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의종의 왕위 복권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분신 김보당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이의당과 정중부는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출정시켰습니다. 군사력을 앞세운 무신들 앞에 문신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난에 동참했던 서해도, 경주와 전주, 충청도 지역 등 남쪽 지방 세력도 항복했습니다. 결국 김보당의 난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거제도에 머물던 의종도 무신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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