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75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의 권력남용, 멸망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고구려는 1차 여당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중요한 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최전방에 위치한 요동성이었습니다. 요동성을 빼앗은 당나라군은 안시성으로 향했습니다. 당나라 관점에서 안시성은 수도인 평양성으로 가기 전에 꼭 점령해야 하는 곳이었고, 고구려로서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645년 음력 6월 20일, 당 태종과 그의 군대가 안시성 앞에서 총공격했지만, 안시성의 성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안시성은 험준한 산 능선을 이용해 축조된 성벽이라 공격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안시성은 흙과 돌을 이용해 쌓은 토축 성벽이라 무척 견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평범한 공격으로 성문을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당나라군은 새로운 작전을 구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시성 앞에 토산을 쌓.. 2024. 6. 14. 신라의 관산성 전투, 화랑 김유신, 태종무열왕 김춘추 신라의 관산성 전투관산성 전투는 554년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중요한 전투로, 한반도 삼국시대의 역사를 바꾼 사건입니다. 이 전투는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과 패권 다툼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신라 재흥왕 재위 시절에 신라는 백제군이 신라의 요충지, 관산성을 습격하며 위기를 맞이합니다. 지금의 충북 옥천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관산성은 신라와 백제의 주요 격전지로, 관산성이 뚫리면 신라는 백제와의 영토 전쟁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신라로서는 관산성을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한 인물은 구해왕의 셋째 아들 김무력 장군입니다. 김무력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자로, 구해왕 항복 이후 신라의 주요 장군으로 조정에서 활약하고 있었.. 2024. 6. 13. 광복 역사적 배경과 주요 사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용했던 광복 당일 광복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사건나라의 경사로운 날을 축하하기 위해 지정된 날을 국경일이라 합니다. 이날은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라 국기도 게양합니다. 한국의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입니다. 그중에서도 광복절은 전국적으로 경축 행사가 벌어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축일입니다. 광복은 말 그대로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적 의미로는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였고, 이 기간에 한국인들은 많은 고통과 억압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지속해서 이루어졌고, 국제 사회의 변화와 함께 광복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광복의 과정에는 여러.. 2024. 6. 12. 조선어학회 설립과 목적, 일제의 의심, 조선말 큰사전 조선어학회 설립과 목적조선어학회는 1921년 한국어의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한국어의 체계적 연구와 표준화를 통해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유학파 출신 이극로로 인해 사전 편찬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됩니다. 이극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주경야독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명합니다. 1910년 식민 지배를 시작한 일본이 조선어연구회 활동을 허용하는 대신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어용단체를 조직해 혼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조선어연구회는 1931.. 2024. 6. 11. 이전 1 ··· 14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