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설립과 목적
조선어학회는 1921년 한국어의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한국어의 체계적 연구와 표준화를 통해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유학파 출신 이극로로 인해 사전 편찬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됩니다. 이극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주경야독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명합니다. 1910년 식민 지배를 시작한 일본이 조선어연구회 활동을 허용하는 대신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어용단체를 조직해 혼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사전 편찬에 나섰습니다. 조선어학회는 한국어의 문법과 맞춤법을 정리하고 표준어를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어 교육과 보급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조선어 표준 맞춤법 통일안'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 '조선말 큰사전' 편찬 등이 있습니다.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이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은 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 속에서도 한글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의 의심
1936년 10월 28일, 조선어학회는 완성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공표하기로 합니다. 이 의미 깊은 행사의 축사를 독립운동가 안창호가 맡았는데 당시 안창호는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의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조선어학회 대표를 맡고 있던 이극로에게 다음 날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학술단체를 인식되었던 과거와 달리 민족주의적 활동을 하는 단체로 의심을 받게 됩니다. 학자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철저히 감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다 한 중학생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 중에서 일제는 드디어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라고 몰아붙일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1943년 4월 1일까지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33명을 잡아들이고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내란죄라는 죄목을 받았는데, 내란죄는 일제의 통치를 반대하며 그 근본을 뒤엎거나 폭동을 일으킨 사람에게 적용되는 죄였습니다. 한글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내란죄는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비해 너무 무거운 죄목이었습니다. 1944년 12월 말에 열린 첫 공판을 시작으로 1945년 1월 16일까지 9번에 걸친 공판 끝에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고 상위 법원인 경성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1945년 8월 13일, 그들은 다시 한번 유죄 선고를 받고 말았습니다.
조선말 큰사전
조선말 큰사전은 1947년 한글날에 발간되었습니다. 전체 표제어가 10만 개가 넘는 대사전인 데다가 비용도 부족해 우선 제1권만 발행해야만 했습니다. 이마저도 1929년 사전 편찬이 시작된 이후 약 1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조선말 큰사전은 전체 3,558쪽에 164,000여 개의 표제어를 실은 한겨레 최초의 '대사전'이었습니다. 조선말 큰사전의 편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죄라는 재심 판결을 받고 낙담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석방됩니다. 이틀 뒤인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광복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석방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하루빨리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사전 원고를 찾아 나섰습니다. 1942년, 일제 형사들에게 검거될 때 사전 원고를 같이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원고는 다행히 경성역 창고에 400자 원고지 2만 6,500여 장 분량 그대로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강로, 류제한, 신영철 등 10여 명의 편찬 인원을 보충해 전체의 표제어와 풀이를 일일이 검토하여 수정하였고, 이렇게 수정한 원고는 광복 후 2년이 지난 1947년 한글날에 '조선말 큰사전'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로써 약 30년의 대장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사전은 현재 우리가 쓰는 국어사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한 모든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기 위해 2014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이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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