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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의 권력남용, 멸망

by 승인아커몬 202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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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권력자 연개소문
고구려의 권력자 연개소문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고구려는 1차 여당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중요한 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최전방에 위치한 요동성이었습니다. 요동성을 빼앗은 당나라군은 안시성으로 향했습니다. 당나라 관점에서 안시성은 수도인 평양성으로 가기 전에 꼭 점령해야 하는 곳이었고, 고구려로서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645년 음력 6월 20일, 당 태종과 그의 군대가 안시성 앞에서 총공격했지만, 안시성의 성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안시성은 험준한 산 능선을 이용해 축조된 성벽이라 공격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안시성은 흙과 돌을 이용해 쌓은 토축 성벽이라 무척 견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평범한 공격으로 성문을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당나라군은 새로운 작전을 구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시성 앞에 토산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성벽 높이까지 흙으로 산을 만든 뒤, 공격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60여 일이 지난 시점, 성안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토산이 완성되었지만 토산은 무너졌습니다. 토산이 무너지면서 안시성 성벽의 한쪽 귀퉁이를 허물어트렸는데 그 바람에 토산과 안시성 성벽 일부가 연결되었습니다. 고구려군은 무너진 성벽으로 신속하게 달려 나가 당나라군을 향해 총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당나라군의 안시성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치열했던 여당전쟁에서 고구려가 승리하자 전쟁을 총지휘했던 연개소문의 권위는 더욱더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의 권력남용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최고 실권자였습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연개소문에게 적대적인 마음을 품은 세력이 많았지만, 당나라와의 험난한 전투에서 가져온 승리는 쿠데타 이후 불안했던 연개소문의 권력이 훨씬 강해지는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당전쟁 직후 당시 연개소문의 관직은 대대로였습니다. 하지만 대대로에 임기가 있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은 태대대로라는 새로운 관직을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연개소문은 집안 식구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더라도 언제 또 당나라가 침략할지, 어쩌면 누군가가 자기처럼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욕이 빚어낸 권력의 대물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개소문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는데도 연개소문은 개의치 않고 큰 자리를 하나씩 안겨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은 큰아들 연남생이었습니다. 연남생이 18살이 되었을 때, '중리대형'이라는 관직에 올랐고, 23살이 되었을 때, 나랏일을 의논하는 최고 귀족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중리위두대형 지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장군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은 권력을 남용하여 장남 연남생 외에 두 아들에게도 아낌없이 관직을 주었습니다. 고구려 조정은 연씨 집안이 장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집안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연개소문이 집권한 지 20여 년 만에 사망하면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연남생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아 고구려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죽기 전 세 아들에게 권력 때문에 다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연남생과 두 동생 사이에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연개소문이 죽은 뒤 주변에서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입니다. 연남생에게는 동생들이 권력을 노리고 있다고, 두 동생에게는 연남생이 그들을 죽이려 한다고 음해한 것입니다. 이간질에 넘어간 동생들은 연남성을 배신하고 수도 평양성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형의 관직도 빼앗았습니다. 동생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연남생은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나라를 도왔습니다. 당나라군은 연남생의 도움으로 667년 가을 고구려 서쪽 변방의 요새였던 신성을 공격해 함락에 성공했고 연달아 국내성까지 차지하면서 고구려 땅 안에 당나라의 근거지를 마련합니다. 당나라군은 고구려의 주요한 성들을 함락해 오며 평양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습니다. 고구려는 결국 668년 음력 9월에 항복하며 700여 년의 고구려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연개소문은 무능력한 아들들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고구려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 과정을 통해 사적인 이해관계가 공공성을 무너뜨린 나라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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