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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신정변 배경, 무신의 위상, 의종의 죽음, 역사적 의의

by 승인아커몬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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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변을 일으킨 무신
무신정변을 일으킨 무신

 

무신정변의 배경

역사를 배우다 보면 한 시대를 전기, 후기 등으로 구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전기, 후기로 나누는 것은 아니고, 사회·경제·정치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면 그에 따라 시기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삼아 전기와 후기로 나눈 것처럼, 고려도 1170년 음력 8월에 발생한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눕니다. 무신정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왕 앞에서 무예 행사가 열리는 중이었습니다. 행사의 하나로 대장군과 한 장수가 힘을 겨루었는데, 나이 든 몸으로 격투를 벌이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대장군이 도망을 가려했습니다. 그러자 이때, 경기를 구경하던 젊은 관료 하나가 걸어 나와 갑자기 대장군의 뺨을 때립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한 나라의 대장군이 난데없이 뺨을 맞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마구 웃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웃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고, 개경의 궁궐 안 곳곳에 시체가 쌓였습니다. 심지어 왕조차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무신들이 일으킨 정치적 변란이라 하여 무신정변이라고 합니다. 이후 고려는 무려 100여 년간 갑옷을 입은 무신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신정변은 고려를 뒤바꾼 결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무신의 위상

고려에서는 무반과 문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렀습니다. 무반은 오늘날의 군인, 경찰과 같은 일을 한 무신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고, 문반은 공무원이나 법관, 국회의원 등의 역할을 하는 문신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고려 초기에는 문신과 무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지만, 나라가 점점 발전하면서 정치를 맡을 문신과 군사를 이끌 무신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 문신과 무신은 단순히 업무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관직의 높낮이를 총 18단계로 구분했는데 문신과 무신 모두 3품까지는 될 수 있었지만, 최상위 등급인 1품과 2품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문신뿐이었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벼슬에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문신과 무신의 역할에 차이가 있다 보니 역할 분담을 하게 되었지만, 점점 문신들이 높은 위치에서 국경을 이끌어나가자 고려사회는 문필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와 맞물려 점차 '무'보다 '문'을 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려 전기만 해도 거란의 침입과 여진 정벌 등 무신들이 활약할 일이 많았지만, 전쟁이 뜸해지면서 무신들의 역할 또한 줄어듭니다. 점차 왕과 문신이 경전으로 토론하거나 시를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장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무신을 멸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의종의 죽음

무신정변이 일어난 것은 제17대 인종의 아들인 의종이 왕위에 있을 때입니다. 의종은 자신의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곁에서 힘이 되어줄 측근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측근 세력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의종은 걸핏하면 궁에서 연회를 벌였습니다. 밤새 이어진 연회는 다음 날 오후에야 끝나곤 했고, 연회에 참석한 이들은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의종이 연회를 즐기는 동안 무신들은 왕의 호위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으며 배를 굶주려야 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왕과 문신들과 달리 무신들은 수준 낮은 처우를 받았기 때문에 분노는 쌓여만 갔습니다. 이렇게 부당한 처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이의방, 이고, 정중부는 반란을 꾀했습니다. 그리고 사찰인 동시에 고려의 왕들이 자주 행차하며 머문 보현원에서 무신들이 칼을 뽑아 들고 문신들을 베어버렸습니다. 정중부 일파는 의종을 거제도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왕을 살려두었던 이유는 고려 사람들은 왕건의 후손 외에는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쉽사리 왕을 죽이고 왕좌에 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제도로 추방당한 의종을 복위시키려는 정변 세력을 발각해 결국에는 의종을 죽입니다. 이렇게 무신정변으로 하늘이 내린 왕이 신하에게 죽임을 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고려 500년 역사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인 셈입니다.

 

역사적 의의

왕까지 죽이면서 집권했지만 무신들은 순탄하게 고려를 이끌지 못했습니다. 무신정변의 중심인물인 정중부, 이의방, 이고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도 무신들의 피 튀기는 권력 다툼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중부와 이의방이 추대한 고려 제19대 왕 명종이 왕위에 있던 27년 동안 무신정권은 무려 4번이나 교체됩니다. 이러한 무신정변이 주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원래 고려는 국왕과 신하가 합의를 통해 이끌어가는 나라였습니다.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독주하는 것을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경계했습니다. 왕과 신하, 신하와 신하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던 나라가 고려입니다. 문신과 무신의 구분 또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무신을 억압하거나 멸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합의와 원칙이 무너졌기에 무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차별과 갈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 쌓인 모멸감과 분노가 정변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고려를 이끌었던 왕과 문신들은 권력에 취해 국정을 농단하면 어떻게 될지 전혀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전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사례들이 많지만, 그들은 역사 공부를 소홀히 했습니다. 결국 빈곤한 상상력 탓에 그들은 시퍼런 칼날에 목을 내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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