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생배경
임진왜란의 시작은 1592년 음력 4월 13일에 일어났습니다. 왜군은 90여 척의 배를 몰고 부산 앞바다에 상륙했습니다. 지방의 성을 차례로 함락시키며 단 17일 만에 한양 코앞까지 쳐들어왔습니다. 1592년 음력 4월 30일 비 내리는 새벽, 조선 제14대 왕 선조는 날도 밝기 전에 궁을 떠나 가마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선조는 평양성에서 국경인 의주까지 몰렸고, 결국 명나라에 군대를 요청합니다.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일본이 일으킨 난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본은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겠다며 조선에 길을 내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명나라와 사대관계였던 조선이 그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이 길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을 발판 삼아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1598년 11월까지 무려 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왜군은 1597년 정유년에도 대대적으로 침입했는데, 임진년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년에 일어난 정유재란을 통틀어 임진왜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했으니 백성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7년간 계속된 일본의 공격으로 조선은 아비규환이 됐습니다.
조선의 도자기 기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탐냈습니다. 조선은 14세기 중국 원나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도자기 기술을 보유하고 발전시킨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차와 찻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모임인 다회를 높은 자격을 가진 최고위층만 열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차를 마시는 예법인 다도를 정치에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지배층은 찻잔 수집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기술력이 부족했던 일본은 자기를 만드는 장인인 사기장들을 대거 잡아 와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일본 지배층들이 좋아했던 다기 중 대표적인 것이 이도다완입니다. 이도다완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데 쓰는 최고급 찻잔이었습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 그릇의 소박함을 높게 평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도다완이 조선에서는 막사발로 쓰였습니다. 일반 민가에서 김치 같은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했는데 일본에서는 그토록 귀한 취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 기술력도, 조건도 갖추지 못한 일본은 기술의 원천인 사기장과 연료인 고령토까지 몽땅 털어 일본의 규슈 지방으로 가져갔습니다. 규슈섬의 아리타, 카라츠, 하기, 나에시로가와, 타테노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 생산지입니다. 조선인 포로로 잡혀간 사기장의 기술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와 그 지역 자체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자기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조선 사나이 이삼평
당시 일본으로 잡혀가서 아리타 지역을 도자기로 부흥시킨 대표적인 사기장이 있습니다. 도조 이삼평입니다. 일본 도자기의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영주는 이삼평이 조선 자기를 만들기를 바랐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이삼평은 함께 끌려온 18명의 조선인 사기장과 함께 도자기를 만들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잠시나마 자리 잡았던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훌륭한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질의 고령토가 꼭 필요한데 조선에서 가져온 고령토가 바닥나버린 것입니다. 조선인 사기장들이 상품성 높은 고급 자기를 만들지 못하면 그들의 가치와 쓸모는 점점 낮아질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삼평 일행은 도자기 굽는 일을 멈추고 규슈를 떠돌며 고령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리타 동부의 이즈미산에 자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양질의 고령토가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삼평은 이즈미산 근처에 자리를 잡고 가마터를 지은 뒤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616년, 일본 도자기 기술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집니다. 최초로 일본 흑으로 백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5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백자 사발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백자 사발을 비교하면 그 모양새가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리타에는 조선인 도자기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고, 마을은 곧 고급 자기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했습니다. 17세기부터 크게 발전한 아리타에서는 매년 봄이면 도자기 축제가 열립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매년 5월이면 이삼평에게 감사를 전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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